폐현수막·전복껍데기도 다시 쓴다…결혼이주 여성들의 환경실험

▲제로웨이스트 실습
부산 영도구에서 결혼이주 여성들이 중심이 된 작은 환경동아리가 주민을 가르치고 지역의 공간을 바꾸는 환경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 2023년 10명으로 시작한 활동에는 지난해 460명이 참여했고, 환경교육을 받던 회원들은 이제 직접 주민 앞에 서는 환경강사가 됐다.
“처음에는 환경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책임감과 의무감이 더 컸죠.”
일본에서 온 오카베 노부꼬 씨는 2001년 결혼 후 부산 영도에서 살아왔다. 자연이 많은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오히려 콘크리트 건물이 많은 도시를 좋아했고 환경문제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가 환경활동을 시작한 것은 2023년 가을이었다. 서부산사회공헌단에서 봉사활동을 논의하다 ‘환경을 주제로 ECO축제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번 해보자는 행사는 “그럼 매달 해보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활동이 지금의 ‘탄탄대로1.5’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서부산사회공헌단 환경동아리에서 출발한 탄탄대로1.5가 부산시 ‘탄소중립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2년 연속 선정돼 부산 영도구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1.5’에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억제하자는 뜻이 담겼다. 회원들이 직접 이름을 정했다. 탄소중립을 꾸준히 실천해 사람과 마을, 지구가 함께 ‘탄탄대로’를 걸어보자는 의미다.
2023년 11월 10명이 참여한 ECO축제로 출발한 활동은 탄소중립 생활실천 캠페인과 환경정화, 주민 환경교육, 폐자원 업사이클링, 도시농업 등으로 넓어졌다. ECO축제는 매달 이어져 올해 7월까지 24회 이상 열렸다.
영도구는 인구 감소와 빈집 증가를 겪는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 가운데 하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영도구 인구는 2015년 약 13만 명에서 지난해 약 10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탄탄대로1.5의 활동 역시 단순한 환경정화에서 주민 참여와 이웃 간 관계를 만드는 쪽으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왔다.
● 10명으로 시작해 주민 460명 참여

▲ECO축제 포스터
변화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 부산시 탄소중립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1차년도 사업에는 모두 460명이 참여했다.
회원들은 영도구 해양산책로와 태종대공원, 영선동 등에서 환경정화 활동을 벌였다. 교회에서 사용하고 남은 폐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들어 쓰레기 수거에 활용하고, 플로깅 과정에서 모은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은 업사이클링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사무실 옥상에는 상자텃밭도 조성했다.
주민들에게 플라스틱과 생태계,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지역자원 업사이클링 등을 알리고 천연비누와 커피박 화분 만들기 등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오카베 씨는 “탄소중립마을 1년차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 환경활동가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대로 따라갔다”고 말했다.
달라진 것을 실감한 것은 2년차 사업을 계속할지를 논의하던 자리에서였다. 그동안 활동을 이끌어온 환경활동가가 회원들에게 말했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처음에는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이제는 여러분이 스스로 앞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하네요.”
오카베 씨는 “스스로는 몰랐는데 어느새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했다.
생활도 조금씩 바뀌었다. 일요일 점심 뒤 남은 음식을 가져갈 때 비닐봉지 대신 배달음식 용기를 씻어 다시 쓰자는 제안이 회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화장실 쓰레기통에 비닐 대신 신문지를 사용하고, 상자텃밭에는 회원들이 직접 씨앗을 가져와 심기 시작했다.
오카베 씨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각자가 ‘이것 하나라도 바꿔볼까’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 실습
● 배우던 결혼이주 여성들, 주민 가르치는 강사로
올해 들어서는 또 한 번 역할이 달라졌다. 환경교육을 받던 결혼이주 여성들이 직접 주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영도구 평생학습 프로그램 등을 통해 환경강사와 에코아티스트 교육을 받은 뒤 지난 6월 태종대 체육공원에서 열린 ‘2026 영도 친환경 Festa’에 강사로 참여했다.
처음에는 걱정도 컸다. 지난해 같은 행사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이들은 전문 공예강사의 체험 프로그램을 따라 해보는 ‘손님’에 가까웠다. 단순히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환경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강사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올해는 그 자리에 회원들이 직접 섰다.
오카베 씨는 “그냥 공예를 알려주는 것이라면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환경’을 이야기하는 강사라고 생각하니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문객과 하나씩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업사이클링을 이야기하고 서로 환경에 대한 경험을 나누면서 긴장도 풀렸다.
이날 회원들은 친환경 놀이와 업사이클링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준비한 400명분의 체험 재료가 모두 소진됐다. 영도 해녀를 모티브로 한 키링과 전복 껍데기를 활용한 장식품 등 지역 특색을 살린 작품도 선보였다.
행사가 끝난 뒤 체험부스를 맡았던 환경활동가는 회원들에게 “내년에도 우리 이 멤버 그대로 합시다!”라고 말했다.
오카베 씨는 그 말을 이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처음에는 환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가기만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환경을 이야기하고 함께 체험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걸 인정받은 것 같았어요.”

▲해녀 키링 만들기
● 영도 해녀·전복 껍데기도 작품으로
환경활동은 회원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영도를 다시 보는 계기도 됐다.
영도 해녀와 바다, 전복 껍데기, 씨글라스 등 지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던 소재를 업사이클링 작품으로 만들면서다.
오카베 씨는 “영도에서 오래 살면서도 지역의 자연이나 자원을 잘 모르고 있었다”며 “작품을 만들면서 ‘우리가 사는 곳에 이런 가치가 있었구나’ 하고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약 70명이 함께 만든 대형 나비 작품 ‘작은 날개짓 지구를 바꾸다’다. 씨글라스 등을 활용한 작은 작품을 여러 명이 함께 만들면서 한 사람의 작업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 경험에서 출발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모여 하나의 나비가 완성됐다. 탄탄대로1.5가 처음 내걸었던 ‘작은 생활실천이 모이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작품으로 보여준 셈이다.
● “우리가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환경활동이 바꾼 것은 생활습관만이 아니다. 회원들이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도 경로당을 찾아 양말목 공예와 천연비누 만들기를 진행하는 등 지역 봉사활동은 해왔다. 다만 자신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에 주민을 초대하는 방식이 많았고 한 번의 행사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탄탄대로1.5 활동을 시작한 뒤에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생겼다. 시와 구에서 마련한 환경교육에 참여하고 지역 환경활동가와 다른 환경단체를 만나면서 자신들이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카베 씨는 “예전에는 우리가 준비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함께해 달라고 초대했다면 지금은 환경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 함께 배우고 일하면서 역할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 앞 화단을 정리해 꽃을 심자 지나가던 주민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주차장 입구 벽면을 환경공간으로 꾸미는 작업에도 주변의 시선이 모였다. 어린이와 청년, 어른이 함께 환경정화에 나서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오카베 씨는 아직 “지역사회와 완전히 하나가 돼 활동하고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행사에서 한 번 만나고 끝나는 관계를 넘어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공공기관이 서로 얼굴을 알고 필요할 때 함께할 수 있는 관계로 만드는 것이 다음 과제다.
그는 “환경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하나의 공통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 환경활동에서 공간 재생으로
올해 부산시 탄소중립마을 만들기 2차년도 사업에도 선정된 탄탄대로1.5는 하반기 활동 범위를 공간 재생으로 넓힌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교회 뒤편 유휴공간을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꾸고 옥상 상자텃밭도 확대할 계획이다. 주차장 벽면에는 업사이클링 환경미술 작업을 진행하고 12월에는 두 번째 업사이클링 작품 전시회도 연다.
환경교육과 에코아트 활동도 계속한다. 영도의 바다와 자연,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해 지역 이야기가 담긴 작품과 주민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목표다.
<출처: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60819/13450196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