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북, ‘고야 대루미’ 식구*의 마을 공동체 봉사 이야기
* 가정연합에서 신도들을 "식구" 라고 부릅니다.
활동 지역: 서울 성북구 삼태기마을 신마을식당
활동 대상: 마을 저소득 주민, 어르신
주요 활동: 격주 2,000원 식사 나눔 · 도시락 · 요리 재능 봉사
운영기간: 2023년 5월 ~ 현재 (2026년 5월 운영 3주년)
월 2회 금요일, 그 부엌에 한 사람이 먼저 와 있습니다
서울 성북구 삼태기마을. 천장산에 포근히 둘러싸인 이 마을은 옛날부터 이런 말이 내려옵니다.
"한번 이사오면 나가기 힘들 만큼 살기 좋은 마을."
그 마을에 격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작은 식당이 있습니다. 이름은 신마을식당. 2,000원을 내면 따뜻한 밥 한 상을 차려주는 곳입니다.
이른 아침, 다른 누군가보다 먼저 그 부엌에 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고야 대루미” 식구입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이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국을 끓이고, 밥솥을 열고, 반찬을 나르는 손이 이미 오래된 손처럼 익숙합니다. 3년째 이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한국 사회와 연결되고 싶었어요"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그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였습니다. 시장에서 물건 이름을 묻는 일도, 옆집에 인사를 건네는 일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이주민이라는 자리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어도 이 사회에 속해 있다는 감각이 좀처럼 오지 않고,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
그래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동네 복지관 문을 두드렸고, 어르신 도우미를 자원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한국 사회와 연결되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돕겠다기보다,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거예요."
거창한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이웃과 같은 자리에 앉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요리는 늘 좋아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밥을 짓고, 아이들 간식을 챙기던 손이 자연스럽게 이웃의 식탁으로 넓어졌습니다.
한 어르신의 마지막 웃음이 그를 붙잡았습니다
식당이 처음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밥을 다 드신 한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씀하셨습니다.
"혼자 밥 먹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이런 식당이 생겨서 정말 기뻐요."
며칠 뒤, 그 어르신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고를 들은 날, 고야 대루미 식구는 그 웃음이 떠올라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웃으시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나요. 2,000원짜리 한 끼가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큰 기쁨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걸, 그날 처음 알았어요."
그 얼굴이 3년을 이어온 힘입니다. 거대한 결심이 사람을 지속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눈빛이 그렇게 합니다.

"언제까지 해야 하지?" 흔들리는 날도 왔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언제나 가벼운 발걸음으로만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봉사를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마주치는 날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즐거워서 가던 길이 어느 순간 의무처럼 느껴지는 날. 그때 “고야 대루미” 식구는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누가 시켜서 시작했나. 아니다. 보상이 있어서 시작했나. 아니다. 좋아서, 기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린 날, 발걸음이 다시 가벼워졌습니다. 봉사가 흔들리는 건 마음이 약해진 것이 아닙니다.
처음의 이유에서 잠깐 멀어진 것입니다. 돌아가면 됩니다.
식탁 위에서 '이방인'이라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오래 살아도 이주민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습니다. 대화 중에 문득 드는 거리감, 나는 여기 사람인가 하는 질문.
그 경계가 사라진 자리는 거창한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식당에서 어르신 곁에 앉아 국을 떠 드리는 자리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어르신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오늘은 뭐 해?" 하고 물어봐 주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어떤 서류나 인정보다 먼저 이 사람을 마을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함께 밥을 짓고 나르는 과정에서 국적을 넘어 진정한 이웃이 되었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봉사가 그녀에게 준 것은 뿌듯함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마을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 그것이었습니다.

가장 낯선 이방인이, 가장 따뜻한 안방 주인이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입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가깝지만 먼 이웃 나라 사람이, 한국 마을의 부엌에서 누구보다 따뜻한 밥을 짓고
있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이었습니다. 말도, 음식도, 인사하는 방식도 다른 사람.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마을 어르신들에게
그녀는 식당 안방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2,000원 식사 한 끼가 만들어 낸 변화입니다.
식당 문턱이 낮아지고 마을 주민이 모이고, 함께 봉사하는 다른 일본 식구도 그곳에 함께 했습니다.
국적도 사연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풍경. 그렇게 고야 대루미 식구가 3년 동안 가꿔온 것이 바로 식구 공동체입니다.
한국에서 '식구'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입니다. 낯선 이방인이 가장 따뜻한 밥을 지어주는 마을 주민이 된 자리.
마을 주민과 동료 일본 식구가 한 부엌에서 어깨를 맞대는 자리. 작은 식당 한 곳이 그렇게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참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런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3년 동안 지켜온 봉사 원칙을 강조한 한 마디가 있습니다.
"봉사를 수단으로 쓰지 마세요.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는 순간, 봉사의 본질은 사라집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나올 때, 봉사는 진짜가 됩니다."
가정에서 가족을 위해 밥을 만들던 손이 마을 어르신의 한 끼를 짓는 손이 됐습니다. 한 가정의 따뜻함이 한 골목으로, 골목이 마을 전체로 번졌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퍼져 나갑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을에도 있기를
보건복지부 「2023년 노인실태조사」는 혼자 사는 노인 비중이 전체의 32.8%라고 말합니다. 3년 전보다 13%p 늘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옆집 할머니가, 어쩌면 먼 미래의 우리가 그 숫자 안에 있습니다.
이 숫자 앞에 국가의 지원을 바랄 수도 있지만,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일. 도시락 하나, 인사 한마디, 반찬 한 가지. 처음부터 크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도 서울 성북구 삼태기마을 신마을식당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골목으로 흘러나옵니다. 2,000원짜리 그 한 끼가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큰 힘이 됩니다.


